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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라스트 파이브…’ 로 연출 데뷔 박칼린 [경향신문]

[무대에서 만난사람]“음악·춤이 있다고 다 뮤지컬인가요”
입력: 2008년 10월 30일 17:29:36
ㆍ‘라스트 파이브…’ 로 연출 데뷔 박칼린

박칼린(41)은 홍시 걱정부터 했다. 청계산 부근에 살고 있는 그는 집 마당에 감나무, 호두나무 한 그루씩을 갖고 있다. 감이 빨간 홍시가 되기 전에 미리 따놔야 하는데 요즘 그럴 시간이 없다. 뮤지컬 음악감독에서 연출가로 데뷔하는 작품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음악감독 출신의 연출가에게는 “안 입어봐도 한눈에 내 옷 같은 것”이다.

“5년 전에 국내 초연된 작품인데 당시 음악감독을 맡았어요. 그때 머릿속으로 연출 그림이 그려졌죠. 텅 빈 무대에 두 개의 행거를 놓고 주인공 남녀는 어떻게 하고…. 실험극 스타일로요. 지금은 생각이 다르지만요. 이번에는 ‘실험극’ ‘리얼리즘극’ 식의 라벨 없이 두 캐릭터가 몰고가는 진지한 상황만으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온 박칼린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공연을 통해 연출가로도 데뷔한다.

11월28일~2009년 2월22일까지 충무아트홀 블루소극장에서 공연될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남녀 2명이 등장하는 뮤지컬이다. 음악도 현악기와 피아노로만 연주된다. 젊은 유태인 소설가 제이미(이건명·양준모)와 가톨릭 집안 출신의 배우 캐서린(배해선·김아선)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지만 결국 헤어지는 5년간의 과정을 담았다. 사랑만으로 극복되지 않는 문화 차이와 자기만의 꿈, 결혼생활로 빚어지는 갈등이 음악에 응축돼 있다. 남자는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여자는 남편과 이혼한 시점부터 각각 5년을 그린다.

1987년 <불의 가면>으로 데뷔한 그는 <명성황후> <미스사이공> <아이다> <시카고> 등 유명작들을 맡아오면서 국내 뮤지컬계 산증인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지난 20여년간 국내 뮤지컬은 괄목상대했다. 그러나 박칼린은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외형은 어떨지 몰라도 극작·작곡·연출 등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빈곤합니다. 안타깝죠.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음악과 춤만 들어가면 무조건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는 제작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물을 흐려놓는 사람들이죠. 1년에 1~2편만이라도 정말 좋은 작품이 공연된다면 그게 발전 아닐까요.”

그가 진단하는 지금의 국내 뮤지컬계는 흙탕물이다. 그런데 적당히 흙탕물일 게 아니라 2~3년 안에 아주 진흙탕물이 돼서 더 쓰러지고 나빠져야 진짜 알맹이만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솎아내지는 사람 중에 제가 끼여 있어도 상관없어요. 대란을 견뎌낸 사람들이 앞으로의 20년, 30년을 만들어갈 주인공들일 테니까요.”

박칼린의 인생에 있어 대란은 언제였을까. 그는 처음 받아본 질문이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마 8~9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미국에서 잘살고 있던 사람이 타국(한국)에 와서 남자들이 판치는 세계에 뛰어들어 쌔(혀)빠지게 때론 쓰러질 만큼 열심히 작업했죠.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요. 하루 16~18시간을 맡고 있는 작품에 쏟아부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며 감정의 배신을 당했어요. 칼 같았죠. 그때가 대란이었던 것 같아요.”

훌쩍 떠나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박칼린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우주항공 관련학을 공부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도망갈 곳은 많았지만 부모가 자신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만일 짐싸서 휙 떠났다면 스스로 부끄러웠을 것이라고. 그의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 안에서 자랐다. 음식솜씨가 좋은 그는 맛있는 김치담그기를 스태프들에게 전수할 정도다. 음악뿐 아니라 연기·기술 등 뮤지컬 관련을 가르치는 킥 뮤지컬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음악감독과 연출이 꼭 다른 영역은 아니어서 연출가 데뷔가 부담스럽지 않다”며 “자신과 바통터치해서 활약하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고 살맛 난다”고 말했다.

<글 김희연·사진 김창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