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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5Y Show/L5Y News

[2008-11-03]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연출 데뷔하는 음악감독 박칼린 [세계일보]

"문화와 꿈이 다른 두 남녀, 나만의 해석 해보고 싶어"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연출 데뷔하는 음악감독 박칼린
  • 뮤지컬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연출하는 박칼린은 “두 명의 남녀가 겪는 갈등과 문제를 솔직담백하게 그린 작품”이라며 “꼭 내 이야기를 하듯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올 연말을 전환점 삼아 글을 많이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원 기자
    배우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41). 탄탄한 실력과 눈에 띄는 외모,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때로 무대 위 배우보다도 더 관객을 사로잡는다.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 캘리포니아 예술대에서 종합음악과,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작곡과를 전공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연기, 작곡, 작사, 연주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국내 1호 뮤지컬 음악감독’이 됐다.

    박칼린이 28일∼2009년 2월22일 충무아트홀 블루소극장에서 공연될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이하 ‘라스트…’)에서 연출에 도전한다. 유대인 소설가 제이미(이건명·양준모)와 가톨릭 집안 출신의 배우 캐서린(배해선·김아선)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결국 헤어지는 5년을 담은 작품이다. 2002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2003년 국내에서도 선보였다. 당시 음악감독을 맡았던 박칼린은 이번에 번역과 개사, 연출을 겸한다.

    “음악감독만 할 때와 하나도 다른 게 없어서 이상해요. 음악감독은 연출가보다도 먼저 배우들과 연습을 시작하는 사람이잖아요. 뮤지컬이 어차피 노래 안에서 드라마를 끌고 가는 것이니까 두 영역이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다만, ‘의상이나 조명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화되니까 재밌어요.”

    무대에는 두 명의 남녀만이 선다. 음악은 현악기와 피아노로만 연주된다. 젊은 나이에 소설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남편과 배우로서 성공하고 싶지만 좌절하게 되는 아내가 겪는 갈등과 그로 인한 헤어짐이 그려진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남자는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여자는 남편과 이혼한 시점부터 각각 5년을 풀어간다.

    박칼린은 “이상하게 처음 이 작품을 할 때부터 꼭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건방진 얘기지만, 나만의 해석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꼭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듯’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런데 남자 입장에서요. 남자가 쉽게 이해되고, 동기를 잘 알 것 같았어요. ‘내가 그 여자였다면 이렇게 행동 안 했을 텐데…’ 이런 것도 있고요.”

    배우, 작곡, 작사, 연주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명성황후’를 비롯한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아이다’ ‘시카고’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며 국내 뮤지컬계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는 “지난 20년간 국내 뮤지컬계가 많이 발전했지만, 문제점도 많다”고 일침을 날렸다.

    “관객은 로맨틱 코미디만 좋아하고, 아무 배우나 무대에 오르고, 제작자는 아무거나 만들고….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됐을 바에는 개나 소나 다 만들어서 폭삭 망하는 게 낫겠다 싶어요. 어영부영 지나다 보면 변명을 하고 넘어가게 되니까…. 그래야 진짜 알짜배기만 남을 거예요.”

    그가 킥 뮤지컬 스튜디오를 만들어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것은 기본을 다지기 위해서다. “8년 전 중국집 뒷골목 냄새 나는 골방”에서 시작한 킥 뮤지컬은 이제 어엿한 아카데미로 자리 잡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제 임무니까 창작 불모지였던 한국에 이게 필요하겠다 싶어 시작했죠. 킥 뮤지컬은 배우·창작자·음악감독·보컬 강사를 양성해요. 분야 간 협업이 가능하다는 게 저희만의 장점일 거예요. 창작자가 작품을 쓰면, 음악감독이 그 작품으로 배우를 훈련하고, 배우는 작품을 해석하고 공부하며 실력이 늘죠. 우리는 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평생 뮤지컬에 목숨 걸겠다’는 친구들만 받아요.”

    멀리 내다보고 시작한 일이다.

    “노래와 춤만 들어가면 뮤지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뮤지컬이 뭔지 알고서 움직이자는 목적이었어요. 난 좋은 마인드를 길러내고, 그들이 능력이 되면 다른 곳에서 발휘하라는 거예요. 제가 가르친 사람들의 첫 작품이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가는 데 13년 안팎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어요. 올해로 8년 됐으니 아직 몇 년 더 있어야죠.”

    한때 뮤지컬에서 1인다역을 맡는 것 외에도 방송 진행자, 교수를 겸하며 바쁘게 살았다. 몇 년 전부터는 꾸준히 글을 써오며 대본 2∼3개를 완성했고 곧 에세이집도 출간한다.

    “이제 음악감독도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그만 하려고 해요.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워낙 글을 좋아하거든요. 내가 왜 글을 안 쓰고 음악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랬으면 더 유명해졌을 거예요(웃음).”

    “이왕 할 거라면 몸을 불태워서라도 똑바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열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피땀 흘려서, 쓰러져 가면서 해왔지만, 꼭 뮤지컬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이 지구에 놓였으면, 세포 하나라도 다 태우고 가지 않는 한 빨리 죽는 게 나아요. 전 음식점을 했어도 24시간 새로운 메뉴 개발하며 붙어 있었을 거예요. 안 그러면 왜 하나요?”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 기사입력 2008.11.03 (월) 18:34, 최종수정 2008.11.03 (월)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