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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5Y Mania/L5Y 감상하기

[블로거기자리뷰] <The Last Five Years>가 가진 특별한 매력 속으로..

제이미와 캐시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The Last 5 Years> 가 다시금 한국 관객들을 찾습니다. 제목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 인지, 2003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후, 꼬박 5년 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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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5 Years> 는 1999년 'Parade'로 토니상을 수상한 Jason Robert Brown의 작품으로, 2002년에는 off-Broadway 에서 상연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등장인물이 단 두 사람뿐이고, 최소한의 세트로 구성된 규모가 작은 작품이지만, 노버트 리오 버츠(Nobert Leo Butz)와 쉐리 르네이 스코트(Sheri Rene Scott)의 오리지널 캐스트 레코딩이 발매될 만큼,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작품이지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도 2005년과 2007년, 이 작품이 연이어 상연되며 큰 화제를 불러모았는데요. 일본은 사실상 우리나라 보다 뮤지컬 시장이 발달해있긴 하지만, 그것도 일부에 국한된 문제로,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은 시키나 토호 같은 대형극단 위주의 작품이 대부분이랍니다. 더군다나 <The Last 5 Years> 는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품이기에 흥행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있음은 자명했구요.


하지만 초연과 재연 모두 남자 주인공 제이미 역을 일본의 뮤지컬 스타인 야마모토 코지(31)가 연기함으로써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일조했습니다. 브라운관, 스크린, 무대 가릴 것 없이 뛰어난 기량을 펼쳐 온 그는 <레미제라블>, <렌트>, <틱틱붐!>, <헤드윅> 등 쟁쟁한 작품에 출연하며 또래 배우 중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한번 출연한 작품에는 좀처럼 다시 출연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The Last 5 Years>는 유일하게 "천장이 보이지 않는 작품" 이라고 언급하며, 다시금 재연에 임해, 이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을 비롯한 일본,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스페인 등지에서 꾸준히 라이센스화 되는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원작자인 Jason Robert Brown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음, 우선 싸게 먹히거든요. 게다가 어느 뮤지컬 프로덕션이든 내보내고 싶어하는 배우 두 명 정도는 있잖아요. 이것은 좋은 기회죠." 농담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특징을 단적으로 설명한 예가 아닐런지요. 화려한 시각적 즐거움을 중시하는 여타의 브로드웨이 작품들과 달리,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오로지 두 배우의 열연에 전적으로 의지한 작품, 그것이 바로 <The Last 5 Years> 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은 토니상을 받은 Jason Robert Brown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고, 그 해의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를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상내역은 <The Last 5 Years> 의 대외적인 가치를 설명해 줄 수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매력을 나타내지는 못 한다고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엄선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소위 브로드웨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작품들이잖아요. 토니상? 아마 안 받아본 작품 찾기가 더 힘들테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와 장황하게 수상내역을 늘어놓고, 유명 인사들의 열렬한 찬사를 나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겠지요. 여기에서는 <The Last 5 Years> 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에 대해 파헤쳐볼까 해요.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그 독특한 구성 . 이야기는 제이미(Jamie)라는 젊은 소설가와 캐시(Cathy)라는 여배우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결국은 이별하는 5년 동안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매우 흔한 사랑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의 시간이 서로 반대로 흘러간다는 것에 그 재미가 있어요. 제이미는 사랑의 시작에서 끝으로, 캐서린은 사랑의 끝에서 시작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기에 거기서부터 생겨나는 안타까움은 배가 되며, 한편으론 무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시간이 딱 한번,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결혼식 장면에서 겹쳐진다는 것. (이 포스트를 참고 하시면 무슨 이야기인지 더 한 눈에 확! 와닿으실 거에요)

아마 이러한 구성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들은 처음 이 작품을 접하면 굉장히 의아해 할 것 같아요. "그가 떠났어, 나는 어쩌면 좋지?" 라고 중얼거리는 캐시의 뒤에 곧바로 등장한 제이미는 "너야말로 애타게 기다린 나의 여신이야" 라고 한껏 들떠 있으니 말이에요. 상황이 이러하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은 커녕 상연시간 내내 머릿 속에는 물음표가 떠다니게 될지도 모를 일!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독특한 구성만큼이나 여운을 남기고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또한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니까요. 극장을 나서며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작품을 보았어' 라고 나름의 만족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기회가 되어 한번 더 극장을 찾는다면 그 만족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거에요. 이러한 구성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혹은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펴본 관객들에게 찾아오는 더한 즐거움을 말이에요.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처음과 끝이 연결되며 2장 다음에 13장 3장 다음에 12장을 연결시켜야 비로소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됩니다. 부디 그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퍼즐이 완성되었을 때의 성취감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실험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 시간을 역행하는 기법은 Jason Robert Brown 이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영화 등지에서 많이 선보인 방식이고, 무대에서도, 예를 들면, 손드하임의 작품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방식인데요. 솔직히 말해 이 극은 스토리 자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이런 역행 구성이 아니면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위험이 있다고 봐요.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혹은 필요에 의해 취한 기법일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평범한 사랑 이야기여서 더욱 특별한 ‘무엇’ 이 이 작품에는 있습니다.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사랑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 작품의 리얼리티는 그것을 넘어선다고 감히 말할 수 있거든요. 원작자인 JRB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극이 진행되는 동안, 혁명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죽는다거나 하는 굵직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랑, 기쁨, 행복, 슬픔과 고독을 함께 느끼며 그 소중함을 되새겨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이야기하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음악입니다. 한 편의 음악극 과도 같은, 전 부분에 걸쳐 거의 노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인데요. 음악극에서 음악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렇기에 자칫 소홀해질 수도 있는 부분 같아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극은 음악이 좋아야 한다' 는 그 대전제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답니다.  피아노, 기타, 첼로, 바이올린의 안타까운 선율이 라이브로 연주되며,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제이미와 캐시로 나뉘어 서로 상반된 음색을 들려주는 그들의 노래는,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올 겨울, 안타까움을 향해 가는 그들의 시간을 좇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