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5Y Mania/L5Y 감상하기

[블로거기자 리뷰] 2003년 어느 봄날의 L5Y, 초연 다시보기. By julianne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03년 봄..

캐씨와 제이미는 이런 모습으로 처음 서울을 찾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Original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Off Broadway 캐스팅의 OST를 기준으로 본다면,

초연의 연출은 Original 버전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제이미의 보이스컬러까지도 거의 흡사했죠.


초연의 연출은, 사실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닙니다.

두 남녀의 시간 흐름이 서로 역행한다는 플롯의 중요한 특징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객석에 앉는다면, 어..이게 뭐지? 하고 일부 헤매기 십상이죠.

역시나, 극중 몇 넘버의 가사에 5년..스물세살..스물여덟살..등으로 살짝 힌트를 주는 것 외에 이 작품은 시점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극 중간중간 숨어있는 그런 Clue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뭐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순하게..형상화됐다고 하기도 뭐한, 거의 원래 무대의 기본 프레임만 살린듯한 심플한 세트는,
시공간이 넘버 한 곡 단위로 바뀌는 이 드라마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가장 효율적인 무대디자인이 아니었을까..싶습니다.

늘 그렇듯, 이런 류의 무대디자인은 열린 공간을 통해 상황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라스트파이브이어즈도 마찬가지죠. 플롯상 각 넘버가 가진 상황, 배경, 장소들은 모두 fix된 상태지만,
사실 관객은 열린 생각들로 다양한 situation을 가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극을 이해하는 데는 사뭇 어려울지 모르지만, 작품을 제대로..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오히려 이런 환경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단,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지침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심리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가는 라스트파이브이어즈니 만큼,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조금이라도 더 열어주고 싶었던데..초연 연출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혜경/성기윤 배우들이 당시 초연의 캐씨와 제이미를 연기했었죠.

작품 전체를 보면, 두 배우 모두 다 엄청난 대사량을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실감이 나는데, 특히 캐씨는 감정에 북받혀 다다다다(?!!) 쏘아붙이거나..휘리릭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꺼번에 쏟아내야 하는 씬 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그 많은 이야기들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정말 안정적으로, 비록 속도는 빠르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주시던 이혜경씨에게 감탄을 마지 않았던 기억이 있네요.^_^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볼 때, 캐씨는 사실 표현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캐씨의 시간은 이혼한 현재에서 사랑했던 과거로 흘러가기 때문에, 상실이라는..어찌 보면 극한 감정으로 시작해 사랑의 설레임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남녀간의 애정이라는 것이 대부분 설레임이나 기쁨에서 아픔 혹은 상실의 페이스로 진행되잖아요..그렇죠? 근데 캐씨를 연기하는 배우는 정 반대의 감정선을 갖고 연기해야 하는 거죠..게다가 캐씨는 나름 욱!!하는 데도 많고 기분의 up and down이 심한 인물인 듯 해요..까다롭죠..;;)

이혜경씨는 당시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과 몽유도원도의 아랑을 통해 한창 최고의 평가를 받고 계실 때였는데, 캐씨의 망쳐버린 오디션 장면을 보면서..정말 이 배우가 그 배우가 맞나..싶기도 했다죠.

그 엄청난 양과 속도의 대사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들려주는 건 물론, 소심하고 자신감 없이 축 쳐진 모습을 참 리얼하게 보여주셨거든요.

그런 캐씨가 너무 안돼 보여서, 그녀를 버린 제이미가 더 밉게 보이기도 했답니다.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프브로드웨이 캐스팅이었던 Norbert Leo Butz가 라스트파이브이어즈 이전에 렌트로 이름을 알렸었다는데, 성기윤씨 역시 라스트파이브이어즈 이전, 렌트의 콜린으로 좋은 연기를 인정받았었습니다. 히스토리에서 음색까지 두 제이미는 닮은 곳이 많은 것 같아요.

제이미라는 캐릭터가, 혼자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리고, 바람도 피다가, 종국에는 사랑했던 아내를 버리는 인물이다 보니, 그야말로 이건 나쁜 놈이라고 욕먹기 딱인 형국입니다. 여자관객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ㅁ=;;
물론 그들의 이혼의 책임을 모두 제이미에게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 역시 충분히 많이 고민하고 아파했거든요.

제이미 캐릭터의 연기는 바로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여 제이미의 입장과 결정에 대해 공감하게 할 것인가..하는 것.

성기윤씨의 당시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그렇게 유명한 스타배우가 아니라서 관객들이 그래 너 잘났다..가 아닌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이미를 바라봐줄 수 있지 않겠느냐 라는 말을 하셨는데요..그런 상황들과 상관 없이, 성기윤씨는 극중 나이보다 깊은 속내를 지닌 제이미의 심리를 다이내믹하게 묘사함으로써 제이미의 입장을 잘 변호(?!!)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제이미의 복잡한 심경이 가장 단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나타나 있는 씬은 바로 Nobody Needs to Know 를 부르는 부분입니다.

캐씨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맹세의 말을 건네는 씬이, 제이미의 심리를 제일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묘하게도 캐씨와의 이별을 결심하는 제이미의 모습이 극중 그 어느 순간보다 슬퍼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순간 제이미는, 이런 결말의 원인이 캐씨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그 이면에는 적지 않은 죄책감과 자괴감이 엿보이거든요.




직역한 듯한 느낌이 좀 강한 가사는 아쉬웠지만..(이 많은 양의 가사를 비트에 맞춰 운율에 맞춰 우리말로 바꾸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그래도, 조금은 더 우리말 스럽게 바꿔줄 수 있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 그럼에도, 라스트파이브이어즈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답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이 조금씩 그리워졌다는 건, 라스트파이브이어즈가 주는 사랑에 대한 성숙한 시각과 조언들이 차츰 필요해지고..또 곱씹어볼 만큼 내 자신이 성장했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라스트파이브이어즈가, 드디어 다시 무대를 찾아오네요.

올 가을엔, 조금은 차갑고 슬플지 몰라도..
그와 그녀의 사랑에, 그리고 이별에..푹 빠져보시는게 어때요?